제주 올레 걷기 에필로그
(버킷리스트 1번 올레 걷기를 완성하다)
작년 이맘때 임피 근무를 앞두고 버킷리스트를 적어 내려가는데 제주올레가 1번이었다.
연속해서 쭈욱 걷는 18일짜리 계획서를 만들었지만 생각을 바꾸었다.
한 계절에 걷는 것보다는 여러 계절에 걷는 것이 괜찮을 듯해서이다.
그래서 작년 가을부터 봄이 무르익은 지금까지 제주를 네 번 오가며 올레 걷기를 완성했다.
올레길은 어느 개인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길은 아니다.
개인의 아이디어와 제주 민초들이 걸었던 길을 이은 것이다.
그러기에 제주의 모든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이름도 참 잘 지었다.
14년 전에 지리에서 설악까지 40일을 이어 걸은 후로 두 번째 긴 걸음이었다.
물론 산보다는 수월했지만 비행기를 열 번 타야 했다.
바닷길과 해안도로 그리고 오름과 밭 담길 작은 마을을 걷고 섬 안의 섬 세 군데도 다녀왔다.
야영장에서 텐트를 피칭하기도 했고 한라산과 연계하기도 했다.
난생처음 사진전을 둘러보기도 했고 밑창이 나간 신발을 교체하기도 했다.
올레가 아니었다면 해 볼 수 없는 경험이었으리라.
일정을 만들다 보니 26개 코스를 순서대로 걸을 수는 없었고 4코스가 그 시작이었다.
식당에서 숙소에서 어느 정자에서 버너를 지펴 식사를 해결하고,
코스마다 예쁜 카페 한 군데씩은 들렀다.
멋진 풍광만을 아이폰에 담은 게 아니라 제주도민의 삶도 담아보려고 애써봤다.
사진을 잘 찍는 기술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사진은 직접 보는 내 눈을 따라오지 못했다.
아쉬움도 없지 않은데 주민, 올레꾼들과의 대화가 별로 많지 않았다는 것이 그중 하나이다.
그것은 시간적 제약에서 오는 여유로움의 부족이었을 것이다.
나한테 가장 멋졌던 한 코스만 고르라면 나는 서슴없이 10코스를 고르겠다.
올레꾼들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그 코스가 가장 맘에 들었다.
우연히 마라도와 연계하여 가파도를 걸었기 때문에 유일하게 패스포트에 스탬프를 찍지 못했다.
이 외에도 놓친 중간 스탬프는 얼마나 많았던지.....
올레를 걷기 전부터 눈에 익은 풍광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여러 각도에서 자세히 보았다.
당연히 항상 날씨가 좋지는 않았다.
우비를 입기도 하고 비를 맞으며 걷기도 했다.
나의 무지를 깨닫게 해 준 곳도 많았다.
선인장이 바닷가에서도 군락을 이룬다는 것도 그중 하나이다.
크지 않은 섬 천리길을 걷는데 내 무식함은 왜 그리도 많이 드러나는지.....
수많은 사진을 찍었고 지웠을 텐데 이 사진은 맘에 드는 것 중 하나이다.
저 파도에 바지를 흠뻑 적시며 걸으면서 무척이나 좋아했다.
7월의 몽블랑, 8월의 일본 남알프스, 지리산 둘레길 그리고 내년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걷기 등,
내 계획에 불을 지피는 싯구도 보았다.
"부딪치는 것만이 소리를 낸다"
저런 비행기와 배를 자주 타고 걸으러 가고 싶다.
올레 여러 곳에서 역사의 아픈 현장을 보기도 했다.
역사는 잊혀서는 절대 안 된다.
또한 그것에 사로잡혀 있어서도 안 된다.
마지막 출정에서는 다음 계획이 떠오르기도 했다.
음표는 곳곳에 있겠지만 찾아 나서야 한다.
그래서 지리산 둘레길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졸업장을 받을 때는 매우 기뻤다.
한 가지를 더 끝냈다는 성취감이 컸다.
그러나
나는 결국 남이 만든 길을 겨우 걸었을 뿐이고, 그 길에서 나만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이렇게 나는 세 계절에 걸쳐 17일간 제주 올레 천리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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