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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행/백두대간

백두대간 산행후기 -1년 동안의 시간여행 백두대간을 걷다-

  

백두대간 종주 후기

 

 


1년 동안의 시간여행 백두대간을 걷다

 

   백두대간은 백두산 장군봉에서 지리산의 천왕봉에 이르는 1,400㎞에 달하는 산줄기로서 우리 국토의 등뼈라 할 수 있다. 우리 땅의 동서를 크게 갈라놓음과 동시에 동해안과 서해안으로 흘러들어 가는 강을 양분하기도 한다. 이것이 곧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인 것이다.

물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산은 물을 건너지 않는다.


   물줄기가 사람을 모으고 산줄기는 사람을 나눈다. 비옥한 평야를 만들어 낸 물줄기가 사람을 모여들게 하여 문화적 동질성을 키워주는 한편, 높고 험한 산줄기는 사람의 접근을 힘들게 함으로써 문화적 이질성을 커지게 하는 경계 역할을 한다. 통신과 교통이 발달한 지금에야 그렇지 않겠지만 우리 선조들에게 미친 영향이란 실로 막대한 것이었다. 따라서 백두대간이라는 산줄기 그 자체가 살아 숨 쉬는 우리 땅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백두대간의 개념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지리관으로 자리 잡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8세기에 이르러 지리학자인 신경준이 저술한 것으로 추정되는 산경표(山徑表)에서 체계적으로 정립되었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정설이다.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1대간(大幹), 1 정간(正幹)과 13개 정맥(正脈)으로 규정하였고 여기서 가지 친 기맥(岐脈)을 기록하고 있다.


   국토가 분단된 현재에는 많은 산꾼들이 아쉬움 속에서도 천왕봉에서 진부령 또는 진부령에서 천왕봉으로 남쪽 땅 절반의 백두대간을 걷고 있다. 등산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작년 겨울 어느 날 설악산에서 만난 산꾼에게 처음으로 백두대간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이 300번째 산행이라는 초면의 산꾼은 나와 함께 대청봉에서부터 비선대까지 걸어 내려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때부터 백두대간에 대한 호기심과 시간여행을 떠나고픈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3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작년 5월 21일에 백두대간 산행의 첫 발을 내디뎠다. 2000리 길 시간여행의 시작은 지리산 천왕봉이었고 절반의 끝은 설악산 진부령이었다.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 이름 있는 산만을 오르다가 지도와 나침판 그리고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가지고 대중교통과 민박집을 이용하며 걷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으나 북으로 향할수록 우리 산줄기에 대한 애착과 그 산줄기를 중심으로 모여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만남은 즐거움이 커져가기만 했다.     대간의 딱 절반을 지날 때부터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들기 시작했고 목적지가 가까워지면서는 초조함도 없지 않았다. 그럴 적마다 가장 힘이 되어 준 것은 나보다 앞서 대간길을 걸은 선답자들의 표지기였다. 그것은 내게 용기를 주었고 종주할 수 있다는 신념을 주었다.

    

   혼자 걷자는 계획대로 대부분의 구간을 홀로 걸었고, 그래서 처음 내 산행기의 제목은 “홀로 걷는 백두대간”이었다. 그러나 홀로 걷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혼자라도 혼자가 아니고 여럿이라도 여럿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산을 걷는 것은 참으로 우리 삶과 똑같다. 산의 오르고 내림이 우리 삶의 부침과도 같은데 어느 산의 정상에 섰을 때, 그 산에 오를 목적인 산꾼들에게는 정상이지만 대간 마루금을 걷는 나에게는 그저 지나치는 한 봉우리일 뿐이다. 우리 삶에서도 어떤 목적을 성취하였다는 것은 삶 전체를 보면 하나의 성공이고, 설령 실패하였다 하더라도 하나의 실패일 뿐이다. 그것이 삶 전부의 성공 혹은 실패가 절대 아니라 생각한다.


   또한 정상에 오르면 그 정상보다는 지나온 작은 봉우리들과 앞으로 걸어야 할 이름을 알 수 없는 봉우리들이 함께 어우러진 풍광이 훨씬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리산 천왕봉, 속리산 천황봉과 문장대 그리고 설악산 공룡능선에서 본 여러 봉우리들과 운해는 내게 그 신비로움과 어우러짐을 보여 주었다. 우리들 생활이 또한 그러하지 않겠는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겪는 과정, 무수한 시행착오, 계획한 일의 실패 등 이러한 것들이 또 다른 목표를 설정하고 성취하는데 더욱 소중하리라 생각한다.

 


   여러 차례 길을 잃거나 어처구니없는 의외의 일도 많았다. 그때마다 누군가가 달아놓은 리본의 안내를 받아 길을 찾고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길을 잃어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을 때, 잘못 하산하였을 때 면식 없는 촌로에게 잠자리와 식사 한 끼의 신세를 지기도 하였고 또 지나가는 차량을 얻어 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위험한 구간에는 어느 대간꾼이 어김없이 밧줄을 메어놓아 손쉽게 오르기도 내려서기도 하였다. 이렇듯 산에서처럼 우리의 일상에서도 알게 모르게 분명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갈 것이 분명하므로 이러한 도움을 항시 고마워하고 또한 베풀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산은 내게 배려를 가르쳐 주었다.

 

   1년하고도 2주일이 걸려 40일간 걸어온 대간길과 그 길을 걸으며 가졌던 무수한 생각들은 이제 거의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2000리 길을 홀로 걸었다는 자부심과 앞에서 말한 어처구니없는 실수, 여러분들의 도움, 정리된 몇 가지 생각 등은 아직 기억에서 생생하고 쉽게 지어지지 않을 듯하다. 시간의 흐름이 그러한 기억들을 더욱 희미하게 할 즈음에는 지금보다 훌쩍 성장하였을 아들과 함께 처음 보다는 더욱 여유롭게 다시 한 번 대간길을 걸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품어본다.

     

   아콩카구아산을 단독 등반한 우리 회사 어느 전문 산악인은 “등반은 나를 버리기 위해 떠나는 무상의 시간여행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1년여 동안 많은 생각을 하며 대간 마루금을 밟은 나는 “산길을 걷는 것은 나를 찾기 위한 상념의 시간여행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대간을 마치면서 고마움을 전해야 할 분들이 많다. 대간 계획을 이야기하고 대간길을 떠날 적마다 걱정해준 감사실 옛 동료들, 서너 구간을 같이 걸으며 격려해준 차제옥 부소장님과 백승근 부장님, 그리고 짧은 시간이지만 대관령 눈길을 함께 해주셨던 이경림 소장님과 조침령에서의 차량 걱정을 덜어 준 이향극 과장님께 감사드리고, 또한 마지막 구간을 걸어 진부령으로 내려설 때 멀리서 오셔서는 축하해 주신 원자력 처장님과 팀장님들 그리고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내가 걷는 대간길을 이해해주고 늘 걱정해준 집사람과 아들이 없었다면 분명 절반의 완성은 없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