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르 드 몽블랑(10)
(가장 기대가 컸던 락블랑을 올랐으나 심하게 알바를 하다)
<열 째날>
트렐 르 숑(09:53)-Lac des Cheserys락 드 쉐저리(13:07)-Lac Blanc락 블랑(13:48)
-L'index랭텍스(16:54)-스키장 비박지(19:30)
아침에 일어나니 많은 비는 아니지만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이번 TMB에서 처음이다.
새벽 1시에 프라이를 치지 않은 텐트로 비가 새어 매트리스와 침낭만 가지고 샤워장으로 들어갔다가 4시경 나왔다.
장애인을 도와 트레킹을 하는 단체의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
좋은 하루가 되라고 인사를 했더니 고맙다며 나에게도 그러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비가 그치지 않으면 락블랑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9시가 넘으면서부터 비가 차츰 잦아들기 시작한다.
여성 두 분은 샤머니 캠핑장으로 내려가고 다섯 명이 락블랑으로 진행하기로 하고 텐트를 걷고 출발을 서두른다.
아, 몽테고개에서 트레킹을 시작할 줄 알았는데 샛길로 접어든다.
음, 프랑스에도 장승이 있구나~~~
들머리에 자연산 블루베리가 지천에 널려있다.
맛은 그다지.....
이 갈림길에 도착하니 한국사람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단체 트레커들이 우리와 같은 길을 가는구나~~~
빙하와 여러 알프스 산군들이 너무 멋지다.
저렇게 멋진 암봉에서 바위를 타는 이들이 부럽기만 하다.
TMB 열흘 째에 가장 어려운 코스를 지난다.
수직 쇠사다리와 발판이 있는 곳이다.
처음부터 그랑 발콩 수드 능선을 걷는다면 이곳은 피할 수 있겠다.
같이 오지 않은 두 분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레 발길을 옮긴다.
저 봉우리가 에귀 호우저?
능선으로 올라서고부터는 눈이 호강을 한다.
역쉬~~!!
산 할아버지 구름모자 썼네~~~!!!
여러 돌무덤을 지나며 많은 이정표를 보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오직 락 블랑으로 갈 뿐이다.
능선에서 살짝 빠져서 걷다 보니 쉐저리 호수가 먼저 모습을 나타낸다.
작은 호수 두세 개를 지났는데.....
그리고 마침내 락 블랑에 선다.
산장에 배낭을 풀고 주변을 돌아본다.
호수 위에 또 다른 호수가 있다.
능선에서부터 같이 걸어온 젊은 친구가 우리 점심 먹는 걸 보며 놀란다.
자기 일주일치 분량이란다.
해발 2,352m에 위치한 락 블랑에 대한 감탄은 여기까지이다.
이제 곧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알바가 시작된다.
저 이정표에 La Flegere라 프레제르 까지 1시간 10분이면 간다고 적혀있다.
저곳으로 가서 야영을 하거나 브레방고개로 가면 오늘 일정을 잘 소화하게 되는 것인데.....
우리는 엉뚱하게도 해발 2385m인 랭덱스로 걸어왔다.
여기에서도 스키장을 따라 플레제르로 내려왔으면 고생을 면 할 수 있었다.
알바도 추억이고 알바도 산행이다.
야생 산양인 부끄탱?
자주 눈에 띈다.
내가 가는 곳이 길이다.
분명 길은 길인데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아니 것 같다.
아무도 상세 지도를 가지고 있지 않고 그나마 내가 가지고 있는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코르누 고개가 나타난다.
그리고 발아래 저 멀리 스키장이 보인다.
오우케이, 저곳까지 가즈아~~!!
7시가 훌쩍 넘었으나 비박을 할 수 있는 스키장에 도착한 것이 여간 다행스러운 게 아니다.
스키장을 얼마 앞두지 않고 젊은 트레커를 만난다.
"저기에서 야영 가능?"
"당근"
"물도 있나?"
"스노우"
아주 심플한 질문에 더 심플한 트레커의 대답이 돌아온다.
숑펙스에서 만난 프랑스 부부와 락 블랑에서 만난 젊은 친구도 여기에서 또 만난다.
이번 트레킹에서 첫 야영지와 마지막 야영지는 물 없는 곳으로 기록되겠다.
그 친구 말처럼 우리는 눈을 녹여 라면을 끓였다.
내가 짊어지고 온 와인도 한 병 있다.
맞은편에는 몽블랑이 솟아있다.
얼마 전의 고생은 눈 녹듯 사라지고 곧 눈은 물이 된다.
아, 얼마나 멋진 장면인가?
10박 11일의 TMB 중 마지막 야영 장소로 최고가 아닐까?
고생은 고생할 적의 문제이고 고생이 끝나고 나면 멋진 추억으로 변신한다.
다음번 트레킹 때는 오늘 일정은 당연히 다음과 같이 바꾸는 것이 더 멋질 것 같다.
트렐르 숑-몽테고개-그랑 발콩 수드 능선-락블랑-플레제르 산장-브레방고개
'해외산행 > TMB(뚜르 드 몽블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뚜르 드 몽블랑(에필로그) (0) | 2019.07.24 |
---|---|
뚜르 드 몽블랑-열 하나(190716) (0) | 2019.07.24 |
뚜르 드 몽블랑-아홉(190714) (0) | 2019.07.23 |
뚜르 드 몽블랑 -여덟(190713) (0) | 2019.07.23 |
뚜르 드 몽블랑-일곱(190712) (0) | 2019.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