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66. 설악산/점봉산/가리산 산행기
(계획과는 완전히 어긋난 그러나 배려를 배운 산행)
1. 개 요
□ 구 간 :
-접속구간 : 비선대→설악동(3㎞), 강산리→진동마을(3㎞), 역내리↔가리산휴양림(8㎞)
-제1소구간 : 장수대→대승령→귀떼기청봉→한계령(11.7㎞)
-제2소구간 : 오색→대청봉→(공룡능선)→마등령→비선대(16㎞)
-제3소구간 : 오색→(주전골→십이담계곡)→점봉산→곰배령
-제4소구간 : 휴양림→가리산→휴양림
2. 일 시 : 2008.6.12~6.15(3박4일)
3. 참가자 : 전진수
4. 교통편
▷ 6/12 노포동(시외버스 23:40)→양양(시외버스 07:05)→장수대(07:45착)
한계령(시외버스19:30)→오색
▷ 6/13 설악동(시내버스19:55)→해맞이공원(시내버스 9-1번)→양양
▷ 6/14 양양(시내버스 06:15)→오색
진동리마을회관(승용차 히치)→현리(시외버스17:20)→홍천
▷ 6/15 홍천(시내버스 07:00)→역내리(시내버스17:44)→홍천(시외버스19:20)→노포동
5. 숙 박
▷ 6/12 오색 비박
▷ 6/13 양양터미널 근처 여관
▷ 6/14 홍천터미널 근처 여관
6. 산 행
3개월 만에 다시 설악을 찾기로 한다. 지리산 칠선계곡 예약이 안 되는 바람에 백두대간 종주 2주년을 맞아 설악을 걷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주변 점봉산과 가리산을 100대 명산 중65, 66번째 산행으로 택하였다.
강릉에서 양양으로 가는 중 고속버스 안에서 깨끗한 일출을 맞아서 이번 산행이 멋지게 펼쳐질 줄 알았는데 계획과는 아주 어긋난 고생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많은 것을 느끼게 한 산행이기도 했다.
<첫째 날>
양양을 출발한 버스는 굽이굽이 자연 속 문명을 오른다. 버스에는 나 말고도 예닐곱 명의 등산객이 있었는데 일부는 오색에서 하차하고 또 일부는 한계령에서 하차하여 나 홀로 장수대에서 내린다. 3개월 전 그 곳이다. 그때는 봄이지만 겨울 산행이었는데 오늘은 대승폭포나 대승령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생각하며 탐방안내소를 통과한다.
-07:45 대승령으로 출발
자연으로 스며들어 대승폭포에 도착하기까지 390개, 103개 168개의 나무계단을 올라 고도를 250m 이상 높인다. 3개월 만에 마주한 폭포에는 가는 물줄기가 떨어지고 있을 뿐이다. 북쪽에 있는 구룡폭포, 박연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폭포라는 대승폭포는 내가 보기에는 영남알프스에 있는 폭포보다 못한 것 같다.
-09:42 대승령 도착
잘 가꾸어진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보니 어느덧 계곡이 나타난다. 계곡수를 실컷 마시고 수통을 채운다. 여기에서 첫 번째 배려를 느낀다. 누군가의 아이디어와 배려로 계곡수를 쉽게 마실 수 있게 해 놓은 것이다.
오르는 길에 뒤돌아보니 건너편에 가리봉과 주걱봉이 깨끗이 조망된다. 3개월 전 대승령은 눈구덩이였는데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간식을 먹고 서북능선의 오른쪽을 향한다. 귀떼기청봉까지는 걸어보지 않은 길이다.
-11:23 점심 식사
대승령에서 귀떼기청봉으로 향하는 길은 처음부터 급경사 나무계단이다. 이러한 계단을 계속 이어진다. 울창한 나무숲은 조망을 가리고 햇빛을 막는다. 그렇지만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피부에 와 닿는다. 귀떼기청봉까지 3.2㎞가 남았음을 알리는 이정목 앞 공터에 자리를 깐다. 물을 아끼기 위해 라면을 끓이는 대신 햇반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과일로 배를 채운다. 그리고 매트리스에 누워 한가로움을 즐긴다. 파란 하늘이 눈부시다. 그것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밀려온다.
귀떼기청봉이 가까이 다가온다. 2년 전 대간길에 한계령에서 올라본 봉우리인데 반대 방향에서 보는 오늘은 완전히 달라 보인다. 그러면서 언젠가 한계령에서 오를 적에 학생들을 인솔해 오신 선생님이 들려준 귀떼기청봉에 대한 우화가 생각난다. 대청에게 키를 재보자고 말했다가 뺨을 맞고 저 자리에 위치하게 됐다는 이야기이다.
드디어 귀떼기청봉으로 오르는 너덜길이 나타난다. 저렇게 하얀 뭉게구름이 떠다니는 파란 하늘이 잠시 후에 돌변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마냥 즐겁다.
-14:09 직전 안부 도착 그리고 마른하늘 날벼락
안부에 도착하여 간식을 먹는데 천둥소리가 들려오며 하늘이 컴컴해진다. 먼 산 위 하늘은 파랗기만 한데 이곳만 그러는 듯하다. 서둘러 배낭을 짊어지고 귀떼기청봉을 오르는데 천둥소리가 더욱 요란해진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을 실감한다. 급기야 정상을 2,3분 남기고 우박이 쏟아지며 번개가 치기 시작한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올라갔던 길을 다시 내려선다. 스틱을 숲에 던져두고 산 아래쪽으로 더 내려가다가 비 피하기 좋은 나무 아래로 숨어든다. 그리고 서둘러 디카와 핸드폰, 지갑, 담배 등 젖을만한 것을 방수파우치에 넣고 배낭커버를 씌운다. 비옷으로 갈아입고 몸을 낮춘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매트리스를 깔고 눕는다. 겁이 나기 시작한다.
다른 편 하늘은 여전히 맑다.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추워진다. 자켓을 더욱 조이고 연상 하늘을 올려다본다. 담배를 피워 문다. 안부에서 올라오는 길에 보았던 젊은 등산객들은 어쩌고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두 시간이 채 안되어 천둥소리가 줄어들고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한다. 매트리스를 걷고 얼른 배낭을 다시 꾸려 정상으로 향한다.
-16:16 귀떼기청봉(해발1578m) 도착
올라가는 길에 숲속에 던져 둔 스틱을 회수하고 3분이 채 안되어 정상에 도착한다. 간간이 천둥소리는 계속된다. 대청봉 방향 하늘과 머리 위 하늘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묘한 대비를 이룬다. 이것이 자연이다.
잠시 후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운행시간이 지체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배낭을 열어 디카를 꺼낸다. 왼쪽으로 공룡능선이 펼쳐지고 앞쪽으로는 대청봉이 다가선다.
-17:08 한계령 갈림길 도착
서둘러 하산을 시작한다. 지금 부터는 걸어본 길이다. 너덜을 앞두고 우비를 벗고 본래의 복장으로 본격적인 걸음을 시작한다. 천둥과 비는 완전히 그쳤다. 다시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한다. 너덜 길을 걷고 숲을 지나 한계령 갈림길에 도착한다. 중간 중간 비박하기 좋은 장소를 지난다.
-18:37 한계령 도착
계획보다 3시간 이상이 지체되어 희운각까지 가려는 계획을 수정하여 한계령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나무계단이나 돌을 깔아 만든 등산로는 걷기에는 편할지 몰라도 자연 그대로의 길을 원하는 산꾼들에게는 지루하기도 할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느껴진다.
햇반 하나를 먹고 오랜 시간을 걸어서인지 배가 몹시 고프다. 휴게소에 들어가서 버스 시간을 알아보고 캔맥주와 오뎅으로 허기를 달랜다. 정확한 시간에 버스가 온다. 오색에 내려 처음으로 오색약수 물맛을 본다. 작년 일본 소보산에서 일본 등산객에게 얻어 마신 물과 톡 쏘는 맛이 같다.
적당한 비박자리를 구하다가 오색 탐방소 앞에 자리를 잡는다. 도로 옆이라서 시끄럽지만 물과 화장실이 가까이 있어서 비박하기에는 괜찮은 장소이다.
<둘째 날>
처음 사용해보는 비비쌕이 제 구실을 해서인지 편하게 잤다. 전혀 추운 줄도 모르고 새벽별을 보며 눈을 뜨니 기분이 여간 좋은 게 아니다. 일본인 네 명이 택시에서 내리더니 내게 코스를 물어온다. 작년 북알프스와 소보산 산행 이야기를 하니 그 중 한 명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소보산 사진을 보여준다.
-05:52 대청봉으로 출발
3개월 만에 똑같은 코스를 오른다. 겨울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테니 기대가 된다. 많은 이들이 이미 내 앞을 걷고 있다. 부부 등산객, 친구 등산객, 나물 캐러 가는 분들.... 그들과의 중간중간 대화가 즐겁다. 특히 홍천에서 오셨다는 부부 산객 남편의 입담이 재미있다. 배낭이 무거워서인지 운행속도는 느리다. 대청이 가까워 오면서 철쭉이 간간이 눈에 띈다.
-09:14 대청봉(해발1078m) 도착
약 4시간 만에 정상에 도착한다. 대청에는 바람이 전혀 없다.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었던 산님들을 정상에서 다시 만난다. 정상에서 조망되는 여러 능선들은 3개월 전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어제 걸은 서북능선의 온화함과 오후에 걷게 될 공룡능선의 예리함이 비교되어 다가선다.
언제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풍경이다.
-10:12 소청 도착
중청대피소로 내려서서 매점을 먼저 찾아 들어간다. 캔커피를 하나 사 가지고 나오니 군인 한 명이 보인다. 한 개를 더 사서 그에게 건넨다. 입담 좋은 부부 산객과 여성 두 분이 뒤이어 도착하고 나는 자리를 뜬다. 소청으로 내려서는 길에서의 조망은 압권이다.
-10:54 희운각 도착
소청에서 희운각으로 내려서는 길도 예전 같지 않다. 나무계단과 돌을 깔아놓은 길이다.
새벽에 오색에서 만난 일본인들이 앞에 내려가고 있다. 인사를 하고 내가 그들을 앞서 희운각에 도착한다. 샘터에서 물을 길어 점심식사를 준비하며 한가로움을 즐긴다. 낯익은 많은 분들이 속속 도착하고 여러 분들이 커피며 삶은 계란, 건빵 등 간식을 보충해 주신다. 대부분이 비선대로 하산한다고 한다. 어느 산님이 공룡능선에 대해 많은 호기심으로 질문을 던져오고, 입담 좋은 부부 산객 남편은 할망구(부인) 때문에 공룡을 포기한다며 좌중을 웃음바다로 빠지게 한다.
-12:08 공룡의 품으로 출발
무너미고개에 도착한다. 지금부터 약 네 시간 동안의 공룡여행 시작점이다. 공룡능선은 이번으로 세 번째이다. 대간 길에 이 방향으로 처음 걸어보았고, 산악회와 함께 반대 방향에서 또 한 번 걸어본 것이다. 두 번은 아침에 출발하여 운무에 취했으나 오늘은 그런 모습은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어제의 서북능선에 이어 설악의 대표 능선인 공룡에서 만날 여러 암봉 군단과 마등령 독수리를 생각하니 마음이 앞선다.
공룡 등어리는 등산객을 위해 잘 준비 되어있다. 밧줄구간도 새롭게 단장되어 있다. 편하기는 해도 아슬아슬함은 덜하다. 신선봉 오르기 전 물이 흐르는 곳에 네 명의 젊은 등산객이 쉬고 있다. 마등령을 8시에 출발하여 지금 도착했다며 늦은 시간에 공룡으로 들어가는 나를 걱정해 준다.
여성 산님 두 분이 신선봉으로 오르고 있다. 오색에서 같이 출발한 분들인데 말투나 행색으로 보아 보통 산꾼은 아닌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역시 많은 산을 오른 베테랑들이시다. 두 산님은 나랑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반복하며 마등령까지 동행하게 된다.
천화대를 지난다. 암봉 아래쪽에는 어느 산악인을 추모하는 패가 붙어있다. 처음 보는 것 같다. 두 여성 산님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쉬는 시간에는 간식을 나누어먹으며 산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어려운 공룡여행중의 달콤한 휴식이다. 마등령의 모습이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절반쯤을 걸은 듯하다. 1275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트랩을 걷는다. 안전시설이 잘 되어있어 어렵지 않다. 반대편에서 많은 등산객들이 내려선다.
-16:16 마등령 독수리와의 만남
4㎞를 걸었다. 마등령까지 1.1㎞가 남았음을 알려주는 이정목을 지나며 머릿속으로 시간을 계산해본다. 3시간 10분을 걸어왔다. 1시간 이내 독수리와 조우할 것이다. 산행을 하며 시간에 집착하는 버릇은 안 고쳐진다. 백두대간을 하며 생긴 버릇인데 날머리에서의 버스 시간 때문이다.
걷는 시간을 줄이고 산에서 머무는 시간을 늘린다면 이렇듯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은 사라지지 않을까? 남은 100대 명산은 여유로움을 즐기는 산행이 되도록 집착을 버려야겠다.
4시간 8분 만에 드디어 마등령 독수리와 마주한다. 지난번 마등령을 넘어 오세암으로 내려설 적의 모습과 변함이 없다. 돌탑에서 내려 앉아있다. 아쉽다. 뒤이어 도착한 두 여성 산님에게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건넨다. 그 분들도 내게 인사를 한다. 이제 비선대로의 하산만을 남겨 두었다.
-16:31 마등령 정상(해발 1320m) 도착
독수리와 10여 분을 같이 있다가 마등령으로 올라선다. 출입을 금한다는 낯익은 안내판이 보인다. 2년 전을 생각하니 반갑기도 하다. 그때 저기를 넘어 황철봉으로 향했었다. 어제 귀떼기청봉에서 우박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이곳에 서있지 않고 오세암으로 내려가서 원래 계획대로 가야동 계곡을 지나 봉정암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세상 일도, 산길을 걷는 것도 항시 뜻대로 마음대로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18:38 비선대 도착
마등령에서 내려서는 길은 지난번에 한창 공사 중이더니 나무계단으로 잘 되어있다. 그런데 샘터를 발견할 수 없다. 공사를 하면서 없어졌는지...... 섭섭한 마음이 든다. 지루한 돌계단을 내려서 금강굴을 지나 드디어 비선대에 도착한다. 13시간 16분간의 산행을 마무리하는 순간이다. 다리가 풀려 내려오는 길에 넘어지기도 했는데 무리한 산행이었음에 틀림없다.
-19:32 소공원 도착
어제 갑작스러운 일기변화로 변경된 오늘 산행을 종료한다. 내일 아침 일찍 점봉산을 오르기 위해 양양으로 가기로 하고 시내버스에 오른다. 힘든 하루였다.
<셋째 날>
양양에서 6시 15분에 출발하는 오색행 버스에 오른다. 오색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정류장 앞에 있는 화장실로 달려가서 배낭을 다시 꾸리고 배낭커버를 하고 젖을 것들을 잘 간수 하여 약수터로 향한다. 그저께 저녁에 마셨던 오색약수를 한 통 챙겨서 주전골 탐방소를 통과한다.
-06:50 주전골로 출발
몇 번이나 계획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한 점봉산을 드디어 오늘 오르게 된다. 100대 명산 중 65번째 산행이기도 하다. 주전골을 따라 올라가는데 부지런한 분들이 벌써 산책을 마치고 내려온다. 내 배낭을 보더니 여러 질문을 던진다. 어느 아주머니는 점봉산은 입산이 금지되었으니 벌금 안 물게 조심해 다녀오라 한다.
아름다운 계곡이나 아직도 여기저기 수해 모습이 남아있다. 계곡을 건너는 목재 다리를 몇 개 지나서 성국사에 도착한다. 사찰 규모가 크지는 않은 것 같다. 경내를 잠시 둘러보고 수통을 채워 본격적인 계곡산행을 시작한다.
-07:39 용소폭포 도착
비를 맞으며 계곡을 몇 번 건너고 데크를 지나니 선녀탕이고 10여 분을 더 오르니 금강문이 나타난다. 내 배낭을 메고는 저 문을 통과하지 못하리라. 용소폭포는 주전골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서 오른편으로 갈라지는데 그 앞에서 두 분의 산객을 만난다. 폭포에서 내려오는 길이며 점봉산을 오른단다.
데크를 따라 3분 정도 걸어 폭포에 도착하니 용소폭포이다. 아담한 폭포이나 비가 와서인지 떨어지는 수량이 많다. 비를 맞으며 폭포를 보는 기분이 색다르게 느껴진다. 다시 되돌아 나오니 아까 만난 두 분이 지도를 보고 있다. 같이 점봉을 오르기로 한다.
-07:57 12폭포 도착
12폭포는 바위를 따라 물이 흐르는 폭포이다. 정말 12폭인지는 세어보지 않았지만 굽이굽이 흘러내린다. 십이폭포를 지나 십이담계곡과 흘림골로 갈라지는 곳에서 출입금지 구역인 십이담계곡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망대암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그러나 앞으로 고생길이 열릴 줄을 꿈에도 모른 채 우리 셋은 안개 속을 걸어간다. 지금까지 보아온 계곡과는 다르게 물이 별로 많이 흐르지 않는다.
-12:24 점봉산(해발1424m) 도착
희미한 길을 따라 계곡을 올라가도 산으로 붙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위험한 무명폭포 앞에서 길이 끊어진듯하여 잠시 헤매다가 폭포 위로 걸어 올라간다. 그래도 길은 희미할 뿐 등산로는 찾을 수 없다. 지도대로 계속 계곡을 따르지만 점점 길이 험해진다. 심지어는 앞서 가는 분들이 낙석을 떨어트리기도 한다. 우리 셋은 계속 진행할지 여부를 상의하다가 끝까지 가보기로 결정하고 오른다. 정말 위험한 구간이 나타난다. 여기서 나는 바위에 엎드려 옴짝달싹 못하는 우를 범한다. 두 분이 내 배낭을 받아주지 않았다면 분명 떨어져서 크게 다쳤을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그곳을 통과해서 우리는 왼쪽 산으로 붙기로 한다. 더 이상 계곡을 따르다가는 어떤 위험에 처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점봉산에서 백부장과 만나기로 한 약속은 분명 지키지 못할 것이다. 그 만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나는 쥐가 나서 고생을 하며 앞 사람을 따라 길도 없는 산길을 오른다. 그리고 10여 분만에 길을 발견한다. 그렇지만 주능선 정상 등산로는 아닌 듯하다. 그 길을 따라 잡목을 헤치고 20여 분 이상 걸어 드디어 주능선에 도달한다. 그런데 콤파스를 보니 망대암산을 지난 곳에 우리가 서 있는 듯하다.
몹시 지친 우리는 점심을 먹기로 하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서로 통성명을 하고 그 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그들이 가져온 술과 내가 만든 햄 김치찌게로 지친 몸을 달래며 이런저런 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다. 1시간 이상을 쉰 다음 다시 배낭을 꾸린다. 이내 점봉산 정상이 나타난다. 생각했던 것처럼 망대암산을 지나쳐 주능선으로 올라왔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헤어진다. 그들은 오색으로 내려가고 나는 곰배령으로 내려서기 위해서이다. 나는 오늘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백두대간에 관심이 많은 그들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저분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분명히 나는 오늘 정상석을 마주하지 못 했을 것이다. 역시 산길을 걷는 것은 홀로 걸어도 홀로가 아니고 여럿이 걷더라도 여럿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달은 산행이다. 산행의 진리임에 틀림없다.
▼▼▼▼점봉산 야생화▼▼▼▼
-13:40 곰배령 도착
곰배령 가는 길은 그 자체가 화원이다. 비를 머금은 키 작은 들꽃이 만발한 화원을 즐겁게 걷는다. 반대 방향에서 많은 등산객들이 올라온다. 나는 그들에게 길을 양보한다. 곰배령에 도착하니 더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멋진 장승이 안개와 어울린다. 어느 산객에게 부탁하여 사진을 한 장 남긴다. 그런데 귀둔리로 내려가는 길이 막혀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정상에서 귀둔리로 하산 하는 것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무작정 강산리로 발길을 옮긴다. 여하튼 이번 산행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없다. 현리까지의 차량이 걱정되고 백부장은 무사히 오색에 도착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또 걷는다.
-14:32 강선리 입구 도착
강선리 계곡을 따라 하산을 시작한다. 계곡 물소리가 우렁차다. 첫 민가를 지나 도로를 따라 내려서니 주차장이다.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많이 주차되어있고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여기서부터 걷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설피민국이라는 집에서 수염이 멋진 분이 나온다. 길을 물으니 3㎞ 정도를 걸어 진동리 마을회관 앞에서 6시 경에 버스가 있단다. 걸어가다가 히치를 할 요량으로 또 다시 무작정 걷는다.
마을회관을 지나 30여분을 더 걸은 다음 지나가는 차량을 얻어 타기로 한다. 몇 대의 승용차가 지나가고 나서 하산 길에 길을 물어온 젊은 부부와 아기가 탄 지프가 멈추더니 태워준다. 현리에 근무하는 군목 대위란다. 편하게 현리에 도착한다. 그런데 꼬이는 것은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가리산 입구에 가는 버스는 없단다. 할 수 없이 기다렸다가 홍천행 버스에 오른다.
<마지막 날>
전날 알아두었던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에 도착하니 가리산이라 적힌 버스가 있다. 그 버스는 06:40에 출발하는 하루 두 번 밖에 없는 가리산행 버스 중 하나이다. 7시 버스는 가리산 휴양림 입구에 서는 원통행 버스이다. 하지만 버스는 떠난 뒤라 4㎞를 걷지 않아도 되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우유를 사서 아침으로 대신하고 버스에 올라 30분 만에 휴양림 입구인 역내리에 도착한다.
안내판을 따라 휴양림으로 걷기 시작한다. 마을 초입에 장승이 많이 세워져있다. 한가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드문드문 민박과 펜션도 보인다. 1시간을 걸어 휴양림 입구에 도착한다. 가리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가리키는 이정목이 눈에 띤다. 입장료도 아낄 겸 계곡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를 건너 산행을 준비한다.
-08:32 가리산을 향해 출발
들머리부터 된비알을 오른다. 그헐지만 등산로는 흙길로 걷기 편하다. 모처럼 낙엽 길을 걸어보기도 한다.
-10:14 능선 도착
바람이 시원하다. 1시간 40분쯤을 걸어 고도를 700m 정도 높여 능선에 도착한다. 이 코스로 오르는 이들은 많지 않은 듯 아직 등산객을 한 명도 만나지 못한 채 혼자 걷고 있다. 홀로산행을 즐기는 나 이지만 오늘은 같이 걷는 이가 옆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10:20 무쇠말재 통과
휴양림에서 올라오는 길과 가리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로 갈라지는 고개를 지난다. 1봉과 샘터까지 1㎞가 남았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10:42 샘터 도착
자연휴양림이라 등산로가 잘 가꾸어진 편안한 능선을 걷는다. 1봉으로 오르기 전에 한 이정표가 샘터를 가리킨다. 블로그에서 본 석간수가 나오는 샘터에 도착하니 한 등산객이 물을 받고 있다. 휴양림으로 도로를 걸어올 때 나를 보았다며 말을 걸어온다. 그 분도 혼자 다니는 산꾼 이란다. 가지산 쌀바위 약수를 생각나게 할 정도로 물맛이 좋다.
-11:03 가리산(1봉, 해발1050.9m) 도착
가리산은 1,2,3봉이 있는데 1봉이 주봉이다. 1봉을 올라 2,3봉으로 갈수 있고, 갈림길에서 직접 2,3봉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나는 1봉을 올라갔다 내려서서 2,3봉으로 가기로 하고 1봉 오르는 길에 배낭을 내려놓고 스틱과 디카만 들고 1봉을 향한다. 밧줄대신 쇠파이프와 발판으로 안전설치를 해 놓은 것이 특이하다. 정상에 서니 조망이 멋지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산군들이 펼쳐지고 바로 앞 2,3봉의 많은 등산객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예쁜 정상석도 보인다.
-11:33 가리산 2,3봉 도착
1봉을 내려서서 2,3봉으로 향한다. 2,3봉 직전에 도착하니 노스페이스에서 진행하는 100명산 단체 등산객들이 많아 걸음이 지체된다. 그들이 오르기를 기다리다가 배낭과 스틱을 내려놓고 오른다. 2,3봉에서도 마찬가지로 조망이 좋다.
-13:13 휴양림 도착
물노리로 내려서려는 계획을 바꾸어 가샵고개에서 휴양림으로 내려선다. 도중에 물노리로 가는 길 안내판을 지나친다. 일찍 귀가하려는 생각에서였으나 결론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선택이었다. 합수곡을 지나 휴양림에 도착하니 취사를 할 수 있는 시설이 눈에 띤다. 라면과 오뎅을 끓여 먹고 여유시간을 즐긴다. 등산화 대신 샌달로 갈아 신고 휴양림 입구로 향한다. 매점에서 담배와 아이스크림을 사서 여유를 부리며 걷는다.
-14:02 휴양림 매표소 도착
4㎞를 더 걸어 내려와 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그리고 나는 색다른 경험을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산을 다니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시내버스를 2시간 50분이나 기다린다. 이것도 산행의 일부라 생각하고 속상한 마음을 달랜다. 가리산은 바람과 계곡이 좋고 별 어려움 없이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산이다.
여러 가지로 힘든 나흘간의 산행이었다. 첫날 귀떼기청봉에서의 우박과 두려움, 둘째 날 13시간 이상의 산행, 셋째 날 크게 다칠 위기를 넘긴 계곡으로의 무리한 진행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고, 약수터에서는 배려를 배운 산행이기도 했다. 그리고 남은 34개의 100대 명산 산행 방법을 바꾸어야겠다는 생각과 아울러 어쩌면 내 산행의 전환점이 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행복했다.
7. 식 단
▷ 6/12 아침(매식), 점심(햇반), 저녁(자장밥)
▷ 6/13 아침(누릉지), 점심(밥라면), 저녁(매식)
▷ 6/14 아침(비빔밥), 점심(찌게/라면), 저녁(매식)
▷ 6/15 아침(김밥/우유), 점심(라면/오뎅), 저녁(매식)
8. 물 구하기 : 양양터미널, 오색약수, 오색탐방소, 희운각, 강선리 계곡, 가리산 샘터, 가리산휴양림
9. 준비물
비비쌕, 침낭, 매트리스, 윈드자켓, 가스버너/코펠, 수통2, 모자, 헤드랜턴, 스틱, 선글라스, 디지털카메라, 여벌옷(양말3, 집티, 반바지), 방석, 장갑, 샌달, 휴지, 라면3, 쌀4인분, 햇반1, 햄/자장 각1, 김치, 락엔락통, 행동식(과일, 초콜릿, 견과류), 비상약키트, 지도/자료
10. 예 산 : 211,390원
▷ 교통비 : 83,390원
▷ 숙박비 : 65,000원
▷ 식품비 및 제비용 : 63,000원
11. 기타사항
▷ 양양시외T 033-671-4411
▷ 오색시외T 033-672-3161
▷ 홍천→가리산 06:40, 12:10, 18:00
▷ 현리시외시외T 033-461-5364
▷ 현리택시 033-461-5800
▷ 홍천시외T 033-432-7892, 7893(금강운수, 시내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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