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7/25>
北岳肩ノ小屋→北岳→中白峰→間ノ岳→三峰岳→熊ノ平小屋→三國平→農鳥小屋
새벽 3시에 눈이 떠졌다. 밖으로 나가니 가스와 구름이 거의 없는 깨끗한 날씨이고 수많은 별들이 쏟아질 듯 반짝인다. 4시가 넘으니 동녘이 훤하게 밝아오고 후지산이 신비스럽게 다가온다. 온도계는 9.6℃를 가리킨다. 한기가 있으나 상쾌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침 식사로 누릉지를 끓이며 연상 일출과 후지산을 번갈아 본다. 식당은 벌써 아침 식사를 하는 산객들로 시끌벅적하다.
갑자기 가스와 구름이 몰려온다. 그 안에서 일출의 장관은 계속 되고 때때로 가스가 걷히면 그 모습을 조금씩 보여준다. 일출을 보고는 방으로 가서 배낭을 꾸려 기타다케로 오를 준비를 한다. 이미 출발한 등산객들도 제법 많은 듯하다. 5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다. 바람이 심한지라 자켓과 오버트라우저로 무장을 하고 5시 20분에 출발한다.
-05:54 기타다케(北岳, 해발3193m) 도착
기타다케로 가는 길에는 많은 야생화들이 새벽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이름을 알 수는 없지만 이슬을 머금은 그것들이 예쁘기 그지없다. 고도를 193m 높여 30여 분만에 금번 白峰三山 종주의 첫 봉우리인 기타다케 정상에 도착한다. 사방으로 가스가 자욱하여 조망은 좋지 않다. 작년 북알프스의 야리가다케에 올랐을 때처럼 감동이 큰 것은 아니지만 일본 제 2봉에 올랐다는 기쁨은 적지 않다. 많은 등산객들을 만난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이들, 기타다케산소(北岳山莊)에서 올라오는 이들이다. 땀방울이 송송 맺혀있는 그들의 표정은 나와 다르지 않다. 즐거워하는 표정들이다. 그중에서 몇 명의 단체 등산객들과의 대화가 즐겁다. 한국에는 산이 많으냐? 높은 산은 몇 미터냐? 등등 질문이 끊이지를 않는다. 그분들 중 60세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은 범상한 산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정상에는 정상을 알리는 신․구 표지판, 정상목과 모자와 옷을 입힌 사람 모양의 돌이 있는데, 일본인들은 그 돌에 기도를 한단다. 몇몇 일본인 아주머니들은 돌 인형에 손을 합장하고 무언가를 기도한다. 한국 아주머니나 일본 아주머니나 기도 내용은 다 똑같지 않겠는가? 분명 가족을 위한 기도일거라 생각한다. 일본에서 두 번째 높은 봉우리에서 20여 분간 즐긴 후에 다시 배낭을 짊어지고 산장으로 향한다.
-07:05 기타다케 산소(北岳山莊) 도착
정상에서 내려서 기타다케 산소로 가는 길에는 야생화가 많이 피어있다. 그리고 일본 천연기념물인 라이조(雷鳥)를 만난다. 작은 것으로 보아 새끼 새인 모양인데 도망가지도 않고 주변에서 서성인다. 작년 북알프스에서는 만나지 못했는데 이번 산행은 운이 좋은가 보다.
가스가 적어지면서 가는 방향으로 나카시라네(中白峰), 아이노다케(間ノ岳)로 이어지는 능선이 펼쳐져 보인다. 그리고 산장에서 힘들게 올라오고 있는 등산객도 보인다. 산장은 어제 지나온 두 곳과 비교해서 규모나 시설이 훌륭하다. 매점으로 가서 커피를 한 잔 사 마시고 산장 앞에서 옷을 전부 갈아입는다. 종주 두 번째 봉우리인 아이노다케로 오를 만반의 준비를 끝낸 것이다. 일본의 제 4봉인 아이노다케에 대한 궁금증이 벌써 밀려오는 듯하다.
-08:03 나카시라네(中白峰, 해발3055m) 도착
산장을 출발하여 中白峰으로 오르는 발걸음이 가볍다. 기분도 상쾌하다. 아직 8시가 채 안된 시간이지만 이른 시간부터의 산행이 좋긴 하다. 나카시라네는 아이노다케로 가는 중에 있는 봉우리인데 3000m가 넘는 고봉임에도 기타다케와 아이노다케의 위용에 가려 그 유명세는 적은 듯하다. 여전히 후지산은 왼편에서 흐릿하게 제 모습을 보여준다. 정상에 도착하니 식사 중이던 아주머니 세 분이 나를 반겨준다. 그리고 역시 수많은 질문 공세가 펼쳐진다.
일본 제 4봉인 아이노다케는 이제 1시간 거리에 있다. 조심하라며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내가 먼저 출발을 한다. 아이노다케로 가는 중에 또 한 여성 산객을 만났다. 이 분도 행색이 보통 산꾼이 아닌 듯하다. 마라톤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도를 한 번 가 보았다고 한다. 오는 중에 라이조를 보았느냐? 북알프스와 비교하여 남알프스 산행은 어떠냐? 등등을 묻고 라이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준다.
그 분의 설명을 전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너무나 진지하기에 계속 고개를 끄떡이며 알아듣기 위해 귀 기울인다. 그리고 같이 담배를 한 대씩 피우며 서로의 산행코스를 이야기 한다. 이 분은 아이노다케에서 시오미다케(塩見岳)로 간단다. 쿠마노다이라(熊ノ平)까지는 내 코스와 같다.
앞 봉우리에서 세 분 과의 대화, 그리고 이 분과의 이야기로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일어선다. 이번 산행에서도 많은 분들을 만나는데 이미 두 번의 일본 산행을 한지라 대화의 폭이 넓어진 것 같다. 이 또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09:10 아이노다케(間ノ岳, 해발3189.3m) 도착
이번 종주의 두 번째 주봉이자 일본 제4봉인 아이노다케에 도착한다. 산장을 출발한지 약 4시간 만이다. 가스가 걷혀 사방으로 조망이 확 트인 것이 여간 멋지지 않다. 기타다케, 센죠가다케, 카이코마가다케, 후지산, 시오미다케 등 일본 100대 명산 중 5개의 산이 조망된다. 아마 알지 못하는 봉우리가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후지산은 앞의 봉우리에서보다 더 뚜렷하게 조망된다.
정상에는 후지산을 카메라에 담는 등산객 한 명만이 있었으나, 내가 도착하고 뒤이어 반대 방향에서 많은 등산객들이 올라선다. 아이노다케에서는 노토리다케로 가는 등산로와 내가 걸을 미부다케(三峰岳)를 거쳐 시오미다케로 가는 길로 갈라진다. 후지를 조금이나마 뚜렷하게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 노토리다케로 가는 길로 가 본다. 만년설은 더 넓고 높게 펼쳐져있다. 정상에서의 풍광에 반해 30분 이상을 아이노다케에서 머문다.
작년 북알프스 종주 때와 마찬가지로 날이 좋다. 먼 나라의 산에 와서 비가 계속 내린다면 참으로 난감할 텐데 나는 운이 좋은가 보다. 사실 야영을 하며 걷고 싶지만 비가 올 때를 생각해서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10:07 미부다케(三峰岳, 해발2999m) 도착
아쉬움을 뒤로하고 아이노다케를 내려선다. 고도를 낮추어 1미터가 부족하여 3000m급 봉우리에 속하지 못한 미부다케에 도착한다. 아래 센죠가다케 쪽에서 십 수 명의 단체 등산객이 올라오고 있다. 정상에는 동해펄프에서 새로 세운 정상목과 돌탑이 있다. 사유림이라 적혀있다.
-11:16 구마노다이라 고야(熊ノ平小屋) 도착
미부다케에서 능선을 걸어 약 1시간 만에 구마노다이라 고야에 도착한다. 걷는 내내 왼편으로 노토리다케가 조망되고, 중간에 평원지대인 산코쿠다이라(三國平)를 지나는데 제법 넓다. 또한 이곳은 노토리다케와 시오미다케로 갈라지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마침 카메라 건전지가 다 소모되어 사진을 남기지 못한다. 어차피 오후에 되돌아올 길이므로 사진은 그때 찍기로 한다.
능선에서 내려다보이는 계곡은 너덜지대이고 노토리다케 고야로 가는 좁은 길이 산허리에 흔적으로 보인다. 아마 오후에 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三國平을 지나면서 구마노다이라 고야의 빨간 지붕이 시야에 들어온다.
수목한계선 아래로 내려서면서는 우리나라의 산을 걷는 느낌이다. 소나무 사이를 걷기도 하고 수풀사이를 걷기도 한다. 모처럼 태양을 피해 걸어본다. 고야 직전에는 미즈바(水場)가 있어 몸을 닦고 수통을 채운다.
산장은 조용하기 그지없다. 차가운 물에 담겨있는 캔맥주를 보니 참을 수가 없다. 한 캔을 사서 고야 앞 식탁에서 마시며 점심을 준비한다. 원래는 이곳에서 4,50분을 더 걸어 아베아라쿠라다케(安部荒倉岳)까지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아 그만 두기로 한다.
모처럼 등산화와 양말을 벗으니 시원하다. 맞은편으로 노토리다케가 빤히 올려다 보인다. 김치를 곁들인 라면과 햇반이 여기서는 성찬이다. 점심을 먹고도 한참을 쉰 다음 왔던 길을 되돌아 갈 채비를 한다.
-12:53 산코쿠다이라(三國平) 도착
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산코쿠다이라에 가는 중에 오전에 만났던 여성 홀로 산객을 다시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며 각기 다른 길을 간다. 그 분은 구마노다이라 고야에서 오늘 자고 내일 시오미다케를 오른단다. 숲길을 걸어 다시 수목한계선을 지나고 넓은 평원지대인 三國平에 도착한다. 내일 시라네산잔 중 마지막으로 오를 노토리다케가 맞은편에서 위용을 자랑한다. 노토리다케는 일본 100대 명산 안에는 들지 못하고 200대 명산 중 하나이다.
-14:48 노토리고야(農鳥小屋) 도착
오전에 능선을 걸으면서 생각했던 산허리 길이 고야로 가는 길이 맞다. 멀리서 봤을 때는 저 좁은 길을 어찌 걸을까 고민했는데 막상 길로 들어서니 걸을 만하다. 三國平에서 고도를 낮추어 내려서던 중 야생화를 촬영하고 있는 등산객을 만난다. 모처럼 만나는 젊은 여성이다. 여유로운 모습의 그녀는 내게 산코쿠다이라까지 멀었냐고 물어온다. 이번 산행에는 이방인인 내게 일본인들의 질문이 참 많다.
계곡으로 내려서니 너덜길이 이어진다. 그 길을 조심스럽게 지나 다시 산허리를 걷는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의외의 지류를 만나니 신이 난다. 세 명의 등산객이 쉬고 있는데 그 중 남자분이 빠르게 일본말을 건네 온다. 다 알아듣지는못해도 계곡물을 마실 수 있는데 차갑고 맛있다는 내용 같다. 목표지점도 얼마남지 않고 해서 배낭을 내려놓고 느긋하게 혼자의 시간을 즐긴다. 사과를 찬 물에 담구고 땀투성이의 온 몸을 닦으니 살것 같다. 10여분 만에 꺼낸 사과는 냉장고에서 나온 듯 차갑다.
다시 배낭을 꾸려 산허리 길을 걷는다. 꼭대기가 고야로 가는 능선인줄 알았는데 산 하나를 더 넘어야 한다. 역시 너덜길이다. 2시 40분경 드디어 능선에 도착한다. 아이노다케에서 내려서는 길이다. 오전에 이 길로 내려왔으면 30분 밖에 안 걸렸을 것을 나는 돌아온 것이다.
오른쪽으로 노토리고야의 빨간 지붕이 보인다. 3시 전에 산행을 마무리 하게 될 것 같다. 아이이노다케 쪽에서 두 명의 등산객이 내려온다. 산장은 지금껏 보아온 것 중에서 가장 지저분해 보인다. 큰 개 세 마리가 짖어댄다. 산장 주인장은 우리말 단어를 몇 개 구사한다. 아마 우리나라 등산객들이 많이 머물렀기 때문에 배운 것 같다. 방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강조하며 숙박계를 적어 달란다. 식사는 방 안에서 만들어도 좋다고 한다. 여기는 의자와 식탁도 없다.
내 자리를 배정 받고 매점으로 달려가서 캔맥주를 하나 사서 풀밭에 자리를 잡고 느긋하게 풍광을 즐긴다. 아이노다케에서 내려서는 길은 고산임을 실감케 한다. 나는 여기서 일본 사람들의 정직함과 준법정신을 하나 더 배운다. 주인장 아들로 보이는 애 둘이 개 세 마리를 데리고 나오더니 고야에서 4,5백 미터 떨어진 곳으로 데려가 똥을 누이고 그 배설물을 봉투에 담아 와서는 화장실에 버린다. 놀랍기 그지없다. 이 넓은 산중에서 아무데나 개똥을 싸면 어떻고 수거하지 않아도 큰 일이 아닐 터인데...... 나중에 또 한 번 똑같은 장면을 목격한다.
전혀 무료하지가 않다. 서서히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식사 준비를 하면서 저녁 풍광을 즐긴다. 오늘도 밥 짓는데 애를 쓰지만 잘 안 된다. 코펠에 물을 몇 번이고 리필한 후에야 간신히 익은 밥을 먹는다.
일몰의 빛을 받은 후지산이 조망된다. 이틀째 수없이 보아 온 후지산 위용에 질림이 없다. 여기에서도 후지는 완연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저녁을 지어먹고 방으로 돌아오니 등산객들은 벌써 잘 준비를 하고있다. 그리고 7시가 되자 소등을 한다. 나 역시 금시 깊은 잠에 빠져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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