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알프스 산행기<둘째 날 8/27>
<둘째 날 8/27>
槍ヶ岳山荘→(大喰岳)→中岳→南岳→南岳小屋→(大キレット)→北穂高岳→涸沢岳→ 穂高岳山荘
오늘은 북알프스 산행 둘째 날이자 다이키렛토(大キレット)를 지나는 날이다. 안개는 많이 끼었지만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계획한 코스대로 산행을 하기로 한다. 간밤에 중간에 잠이 깨어 별을 보고자 밖에 나왔으나 기대했던 만큼 반짝거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은근히 아침 날씨가 안 좋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여간 다행이 아니다. 아침식사로 누룽지를 끓여먹고 곧 우리에게 펼쳐질 다이키렛토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갖고 산장을 출발한다.
06:30 다이키렛토를 향해 출발
어제 야리 등반의 감격을 잠시 뒤로 한 채 우리 둘은 파이팅을 외치고 몇몇 낯익은 일본 등산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산장을 출발한다. 안개가 조금 낀 날씨이지만 좋은 편이다. 아마 오늘 아침에 야리를 올랐어도 일출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07:17 나카다케(中岳해발3080m) 도착
오늘 첫 번째 봉우리인 오바니다케(大喰岳)는 여기서부터 채 500m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봉우리를 지나면서도 안개 때문에 정상목을 보지 못하고 지나는지도 모른 채 지났다. 앞으로 걸어야 할 나카다케 가는 길과 지나온 야리의 신비로움은 온통 안개 속에 숨어 있다. 나카다케에 오는 도중에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한국인 단체 등산객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고 우리가 앞서 걸어서는 나카다케에 도착한다. 마침 그곳에는 어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많이 웃었던 일본 등산객들도 있다. 지나온 야리는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07:56 2986m 피크 통과
나카다케와 미나미다케(南岳)의 중간지점에 도착한다. 가야 할 능선과 지나온 능선이 잘 조망되고 야리는 계속해서 안개 속을 들락거린다.
08:07 덴구하라(天狗原) 분기점 통과
나카다케를 내려서면 샘터가 있다고 하였는데 물이 말라서인지 발견하지 못하고 덴쿠하라 분기점에 도달한다. 이 분기점은 우리의 두 번째 산행계획서상에 비가 내릴시 이곳에서 빙하공원을 거쳐 어제 올라서던 능선을 따라 요코산장까지 가기로 한 곳이다. 그러나 이제 안개는 거의 걷히고 화창하다. 야리가다케 산장에서 만나 나카다케까지 함께 걸어온 일본인 등산객 일행은 여기에서 요코산장으로 하산한다고 한다.
08:26 미나미다케(南岳해발3033m) 도착
오늘 우리 산행의 세 번째 봉우리에 도착한다. 바로 아래에 미나미다케고야(南岳小屋)의 빨간 지붕이 보이고 그 뒤는 다이키렛토가 시작되는 곳이다. 그리고 호다카다케(穂高岳) 연봉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아름답다. 또한 정상에서는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사방으로 높은 봉우리와 호쾌한 능선이 멋지게 조망된다.
08:34 미나미다케고야(南岳小屋) 도착
여기에서 충분한 휴식과 영양 보충을 한다. 몇몇 등산객이 우리 보다 앞서 다이키렛토로 출발한다. 산장 밖 벤치를 차지하고 이제까지의 산행기를 정리하고 걸어야 할 다이키렛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잠시 후에 한국인 등산객들이 미나미다케에서 내려온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우리가 먼저 출발하기로 한다. 바로 코앞에 다가선 다이키렛토는 과연 수 없이 도상 훈련을 해온 바로 그 모습을 보여줄까? 09:15 출발한다.
주의 표지판을 지나 여성 등산객을 만난다. 행색이나 말투가 보통 산꾼이 아닌 듯하다. 일본어를 전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여기서 부터 한참을 급경사 좁은 길을 내려서야 한다고 한다. 일본어로 ‘퉁~’이라 표현하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급경사 길을 한참 내려가야 한다는 은어이다. 그녀의 일본어 설명을 종합해보면 우리는 지금부터 다이키렛토 최저안부(해발2748m)까지 표고를 253m나 낮추어야한다. 거리는 1.6㎞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려움이 커지는 것과 비례하여 차분함도 더 해지는 듯하다. 중간 중간에 담배도 피우고 간식도 먹어가면서 서두르지 않는다. 즐겁다. 그리고 아름답다. 우리 발밑에 있는 뭉게구름을 내려다보는 기분을 무어라 표현할까? 지리나 설악에서도 종종 보아온 운무이거늘 3000m급 산에서 보는 그 광경은 더욱 황홀케 한다.
위험한 구간을 수 없이 지나면서도 별 안전장치를 볼 수가 없다. 정말 위험한 곳에는 간간이 철사다리나 쇠줄이 있지만 웬만한 곳은 본인의 조심스러움과 담력으로 지나야 할 뿐이다. 아찔한 곳을 지날 때는 긴장감에 잘 모른다. 그러나 그곳을 지나와서 되돌아보면 그때서야 다리가 후들거리며 과연 우리가 지나온 길인지 눈을 의심케 할 뿐이다. 일본 어느 그룹의 일본 등산객들은 안전띠를 서로 연결하여 걷기도 하고 안전모를 쓴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띤다. 우리처럼 커다란 배낭을 멘 이들은 거의 없다. 그리고 대부분은 중장년층 등산객이다. 이들 틈에서 우리는 또 걷는다.
11:57 기타고야(北穂高小屋) 도착
출발한 지 2시간 10분 만에 기타호다카고야가 올려다 보이는 곳에 도착한다. 위험한 구간은 거의 통과한 듯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저곳까지 오르면 된다. 우리 앞에 여섯 명의 여성과 가이드로 보이는 남성으로 구성된 단체 등산객이 오르고 있다. 반갑게 인사를 하자 우리 보고 앞서 가란다. 그러나 우리는 앞서 가지 않는다. 아마 그들도 지금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감격해 있을 터인데 그 기분을 깨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들 일행은 서로에게 힘내서 오르자고 격려를 한다. 곧 런치타임이라며.... 내가 오늘 점심은 무어냐고 묻는다. 그들 중 한 명이 ‘바켓토(빵)’과 ‘차’라고 대답한다. 나는 맥주가 마시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순간 힘든 것을 잊고 모두가 잠시 웃음바다로 빠져든다. 드디어 해발 3100m의 산장에 도착한다. 테라스와 매점에는 많은 산꾼들로 북적댄다. 맥주와 차를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모습들이다. 아! 마침내 다이키렛토를 무사히 통과한 것이다. 우리 둘은 하이파이브를 한다. 아! 이건 무슨 기분일까? 성취감? 안도감? 우리 앞에 오른 단체 등산객들과도 인사를 나눈다. 그들도 참 대단하다. 인솔자의 리더에 맞추어 조용하게 그리고 질서 정연하게 걷는 그들의 모습은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미나미다케에서 여기까지는 도상거리 2.6㎞, 직선거리 1.7㎞에 불과하다. 우리는 2시간 42분 만에 통과하였다. 지도상으로는 3시간, 그리고 보통 등산객들이 4,5시간에 지나는 것과 비교하면 기다시피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빨리 걸은 것이다.
먼저 매점으로 뛰어가 생맥주 두 잔을 사서 테라스에 앉는다. 무사히 다이키렛토를 지나온 것을 자축한다. 그리고 점심으로 부산에서 공수해 온 칼국수를 끓이려는데 쉰 냄새가 진동을 한다. 라면으로 대신하고 수통을 채워 바로 머리 위에 있는 기타호다카다케(北穂高岳)에 오를 준비를 한다. 내 수통이 1리터짜리인데 라면을 끓이는데 반 정도를 사용해서 나머지 반을 채워 달라니 100엔만 받는다. 왠지 기분이 흐뭇하다.
13:40 기타호다카다케(北穂高岳해발3106m) 도착
산장과 불과 고도 차이가 6m 밖에 안 되는 정상을 순식간에 올라선다.
15:50 카라사와다케(涸沢岳해발3110m) 도착
기타호다카다케에서 내려서자마자 카라사와(涸沢)/오쿠호다카다케(奥穂高岳)/기타호다카다케 갈림길인 분기점이 나타난다. 여기서 착각을 하여 카라사와 쪽으로 내려서다가 백 부장이 아무리 봐도 옳은 길이 아닌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지도를 펼치니 과연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다. 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갔어야 했다. 일찍 발견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나는 뒤처리를 할 것이 있어서 북알프스에 내 흔적을 남긴다. 카라사와 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무사히 다이키렛토를 지나와 사기충천한 우리에게는 큰 장애물이 될 수 없다.
산장을 먼저 출발했던 여성 단체 산행객을 다시 만난다. 그리고는 카라사와다케에 같이 오른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아까보다는 더 재미나게 이야기를 나눈다. 등산로를 따르다 보면 카라사와다케는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 봉우리이다.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이다. 아래쪽에 오늘 우리가 숙박하게 될 호다카다케산소(穂高岳山荘)가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16:10 호다카다케산소(穂高岳山荘) 도착
정상에서 내려서는데 안개가 가득하다. 가득한 안개 사이로 큰 목소리가 들려온다. 직감적으로 한국 등산객일거라 생각한다. 산장이 가까워질수록 과연 한국말이 들린다. 산장에 도착하니 술에 취한 단체 등산객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한국에서와 똑같은 행동을 하는 그들을 보고 과연 일본등산객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분명 가이드가 동행 했을 것인데 주의를 주지 않은 모양이다.
산장으로 내려서니 오늘의 산행을 무사하게 마쳤다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우리는 다시 한 번 하이파이브를 한다. 오늘은 9시간 40분 동안 8.28㎞를 진행하였으니 그 험난함을 짐작 할 수 있다. 걷다가 기다가를 반복하며 그렇게 진행한 산행이었다.
방을 배정받기 위해 산장 안내소로 들어가니 산객들로 북적인다. 그런데 산장 아가씨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우리에게 개별 방을 권한다. 숙박비가 엄청 비쌀 것 같아서 정확히 하기위해 영어로 이야기해보니 아까 알아들은 대로이다. 결국 츠루가다케(劍岳)라는 일반 방을 배정받았다. 그 방에는 노인 한 분이 계셔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니 반가워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71세 되신 분이다. 그 분의 건강함과 여유로움이 참으로 부럽다. 밖으로 나와서 캔 맥주를 하나씩 마시는데 어제 야리 정상에서 만난 젊은 일본인들을 다시 만난다. 소주 한 팩을 주니 좋아한다. 참치 김치찌게를 만들어 맥주, 소주와 곁들여 오늘의 다이키렛토 종주에 대해 즐거운 담소를 나눈다. 산길을 걷는 것만큼이나 즐거운 시간이다.
그런데 산장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난다. 하쿠바(白馬)에서 다테야마 산장을 운영하는 유재웅씨 인데, 산행준비를 위해 인터넷 써핑을 할 때 자주 뵌 분이다. 실제로 만나니 그 반가움이 더 하다. 소주를 같이 마시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내일 숙박이 곤란하게 되면 찾아오라고 산장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나고야에서 등산용품을 쇼핑할 수 있는 가게도 알려주신다. 둘째 날 산행이 북알프스로 찾아드는 어둠과 함께 조용히 마무리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