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일출 산행기(110106)
지리산 일출 산행기
(감격의 천왕봉 일출을 보다)
1. 개 요
□ 구 간 :
-접속구간 : 중산리→탐방안내소(1.7㎞)
-제1소구간 : 순두류→천왕봉→장터목대피소(9.5㎞)
-제2소구간 : 장터목대피소(↔천왕봉)→세석대피소→백무동(13.3㎞)
2. 일 시 : 2011.1.6~1.7(1박2일)
3. 교통편
▷ 1/6 부산서부터미널(시외버스 08:20)→중산리
▷ 1/7 백무동(버스13:20)→함양(시외버스14:10)→대전(시외버스16:45)→무주
4. 참석자 : 전진수
5. 숙 박
▷ 1/6 장터목대피소
6. 산 행
<첫째 날>
중산리탐방안내소→순두류→법계사→천왕봉→(제석봉)→장터목대피소
작년 1월 초에 칠선계곡 트래킹 후 일 년 만에 지리를 다시 찾았다. 주말에 지인들과 덕유산 산행을 하기로 하여 지리를 둘러 덕유로 갈 계획이다. 여러 가지로 코스를 검토하였으나 금요일 저녁에 김 소장님 팀과 약속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는 백무동으로 내려서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평일인지라 장터목대피소에 잠자리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이다.
100대 명산 이후로 지리를 열 번 이상 찾았지만 아직 천왕봉에서의 일출을 경험하지 못했는데 이번 산행에서 지리산 신령님이 도와준다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들머리는 마야계곡의 조용함을 떠오르며 순두류로 정한다.
마야계곡으로 들어서니 눈이 엄청 많다. 이곳으로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법계사로 향한다. 중산리를 시작으로 산행을 할 시에는 보통 9시 정도에 시작을 했는데 오늘은 두 시간 정도 늦게 산행이 시작된 지라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다.
법계사를 앞두고 하얀 눈 모자를 쓴 천왕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내게 어떤 설경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내려서는 등산객 몇 팀을 지나쳐 로터리대피소에 도착한다. 평일의 한가로운 산행이 대피소에서도 엿보인다. 취사장으로 가서 라면을 끓여먹고 시계를 본다. 천왕봉에서의 일몰은 너무 이를 것 같다. 어차피 오늘 목적지는 장터목이니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걷기로 한다. 항시 시간에 쫓기듯 종주를 할 때와는 달리 여유롭다.
개선문에서의 한 차례 휴식을 제외하고는 단숨에 정상까지 오른다. 무심코 지나쳤던 선바위를 디카에 담고 등산객들이 버린 음식물 찌꺼기를 주워 먹는 산새들의 무장해제를 목격한다. 인간은 자연을 찾고 자연은 인간에 익숙해진다.
천왕봉의 매서운 바람이 눈물을 흘리게 한다. 아무도 없다. 혼자서 5분간 정상을 독차지하며 풍광을 즐긴다. 평일 느지막하게 오른 정상이 내게 주는 선물인 듯하다.
강풍을 피해 헬리포터로 내려서니 이번에는 상고대가 나를 반긴다. 눈과 빛과 바람의 조화를 보여준다.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보지 못한 풍경이다.
통천문을 지나 제석봉에 선다. 설경이 너무 아름답다. 천왕봉에 오르면 늘 찾는 고사목과 내가 죽음의 미학이라 이름 붙인 제석봉의 나무와 돌이 나를 반긴다. 겨울 지리를 걸으며 오늘 같은 설경은 아마 처음이리라.
흰 눈이 하늘과 어울리면 파란색이 된다. 이것이 조화이다. 바람은 나무에 붙은 눈을 반대쪽으로 쏠리게 하여 또한 조화를 이룬다. 이 모든 것이 어울려 거울 풍경을 만들어 낸다.
제석봉에 바람이 세게 불며 눈보라를 일으킨다. 장터목을 목전에 두고 오늘 겨울 풍광의 하이라이트를 내게 보여주나 보다. 손이 시리다. 서녘 하늘은 붉게 물들어 오기 시작한다.
제석봉에서 벗어나 비탈진 눈길을 내려서는데 장터목대피소 지붕이 보인다. 다섯 시가 채 안된 시간이다. 취사장으로 가니 빈자리가 많다. 물을 뜨러 내려가기 싫어서 생수 한 통을 구입해서 식사를 준비한다. 평일은 산행뿐만 아니라 대피소에서의 움직임도 여유롭다. 아마 올 겨울 두 달 동안은 이런 여유로움을 자주 즐기며 산행을 즐길 수 있으리라.
천왕봉에서 보지 못한 일몰을 대피소 데크에서 본다. 큰 감흥을 주지는 않지만 지리에서의 두 번째 일몰이다.
단체로 온 몇 분의 등산객이 내 앞에서 식사를 하다가 술 한 잔과 오리고기 한 점을 주며 말을 걸어온다. 소띠들로 이루어진 팀이란다. 나는 마땅히 드릴게 없어서 사과를 하나 깎아서 내민다. 찌게와 소주로 소찬을 즐기고 방을 배정받아 들어간다. 따듯하다. 등산객이 많지 않아 넓게 자리를 잡고 매트리스와 침낭을 펼친다. 여덟시가 안 되었는데 잠이 올지 모르겠다. 내일 일출은 7시 35분경이라는 방송이 나온다. 담배를 꺼내들고 밖으로 나간다. 차가운 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둘째 날>
장터목→천왕봉→장터목→세석산장→(가내소폭포)→백무동
5시경 기상하여 침낭 속에서 게으름을 피우다가 아침식사를 하러 취사장으로 나간다. 많은 이들이 일출을 보러가기 위해 부지런을 떤다. 관리소에서 알려준 일출시간 한 시간 전에 스틱과 카메라를 들고 천왕봉으로 향한다. 어제 정상에서 대피소까지는 설경이 멋졌는데 간밤의 바람 때문인지 눈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것 역시 바람의 조화일 것이다. 제석봉에 오르니 이미 동녘은 붉은 빛이다. 드디어 장관이 펼쳐진다. 여기저기서 등산객들의 탄성이 끊이지 않는다. 아마 여기 모인 이들은 모두들 삼대가 덕을 쌓았나 보다. 온도계는 영하 17도를 가리킨다. 어제 취사장에서 만난 분들도 일출을 보러 왔다. 사진을 부탁하여 몇 장 남기고 그들과 헤어진다.
어제 걸었던 길을 다시 걷는다.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풍광을 만난다. 아침 햇빛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조화를 즐긴다. 어제의 색이 파란색이었다면 지금은 붉은 색이다. 멋지다.
장터목으로 되돌아와서 캔커피를 마시며 몸을 녹인 후에 세석으로 향한다. 오늘도 어제처럼 여유로운 산행이 될 것이다. 아직 산장을 떠나지 않은 등산객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연하봉을 지나 촛대봉에 선다. 바람이 세차다. 운무에 가린 봉우리들이 펼쳐진다. 멋지다. 아래쪽으로 세석산장이 보인다. 이제 저 곳에서 한신계곡을 지나 백무동으로 하산하면 일 년 만에 오른 지리산 산행을 마치게 된다.
3년 전 겨울에는 눈 대신 비가 내려서 비를 맞으며 걸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오늘은 어떤 모습일지 벌써 궁금해진다. 촛대봉 암봉에 서는 대신 천왕봉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본다. 멋진 설경과 일출을 보여준 천왕봉을 뒤로하고 영신봉 아래 세석으로 내려선다. 아마 여름에 다시 천왕봉을 찾게 될 것이다.
세석대피소에는 산님들이 안 보이더니 매점에서 캔 커피를 하나 사 가지고 오니 등산객 세 팀이 도착한다. 두 분은 샘터에서 올라오고 두 분은 벽소령에서 내려온다. 간식을 먹으며 이틀간의 지리를 다시 머리에 되새긴다.
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은 3년 전 적설량이 매우 적었던 겨울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급경사 밧줄구간을 조심스레 내려선다. 어떤 장난스러운 등산객의 작품이 미소를 짓게 한다. 언제 만든 것일까? 오늘 나보다 먼저 저 길을 걸어 내려간 산님이 있는 것일까?
배가 고프다. 버너를 지피기가 귀찮아서 차가운 밥에 비빔양념을 뿌려 후다닥 먹어 치운다. 허기는 가셨지만 왠지 허전하다. 한신 계곡의 많은 폭포들은 눈에 숨어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가내소 폭포도 안내 이정목만을 본 채 지나친다.
탐방안내소를 지난다. 계획보다 한 시간쯤 일찍 내려섰다. 정류장으로 달려가니 함양행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눈과 일출과 바람으로 인해 행복했던 지리에서의 이틀을 뒤로하고 버스에 오른다. 마음은 이미 덕유산으로 향하고 있다.